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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받고 싶었지만, 이제는 나를 먼저 사랑하기로 했어– 《에이미》, 《에이프릴의 딸》과 함께

by Hary0 2025.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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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 속, 창가에 서서 자신의 흐릿한 반영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의 얼굴. 그녀의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과 고요한 슬픔이 담겨 있다.
▲ 창문 너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에 잠긴 여성의 순간. 사랑받고자 했던 마음과, 이제는 나를 먼저 사랑하려는 다짐 사이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표현한 이미지입니다.

1. 끝없이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한다. 존재만으로 충분히 귀하다는 확신보다, 누군가의 눈빛이나 말 한마디에 나의 가치를 찾으려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사랑을 갈망하게 된다. 진심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안아주는 사람, 내가 약할 때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주는 사람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았을 때다.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외면하며,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조차 내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원하고 있지만,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두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사랑받기 위해’ 애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더 예뻐지려고, 더 착해지려고.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쌓일수록 나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언젠가부터 나는 누군가의 시선에 맞춰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마음보다 상대의 반응을 먼저 신경 쓰고, 내 감정보다 상대의 요구에 먼저 반응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가장 마지막 순서로 밀어놓은 채 살아왔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사랑받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감추고, 조절해야 한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일까?

2. 《에이미》 – 사랑의 갈망 속에 무너진 한 소녀의 삶

영화 《에이미》는 실제 가수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재능과 열정을 가졌지만, 동시에 감정적으로 너무도 여렸던 그녀는 음악으로는 세상을 감동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세상과 자신을 감당하지 못했다.

에이미는 사랑받기를 갈망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녀는 인정받고 싶었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버림받지 않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아버지는 그녀의 유명세를 이용했고, 연인은 그녀를 지탱하기보다 무너뜨렸다. 그 속에서 에이미는 점점 자기를 잃어갔다.

음악은 그녀의 유일한 표현 수단이었지만, 그마저도 상업적인 프레임에 갇히며 순수성을 잃어갔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음악으로 표현할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점점 더 왜곡되어 갔다. 결국 에이미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세상은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진심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사랑받지 못했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묻는다. “그녀가 정말로 필요했던 건, 그저 한 사람의 따뜻한 지지 아니었을까?” 우리는 에이미를 보며, 사랑받고자 했던 욕망이 아닌,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닫게 된다.

3. 《에이프릴의 딸》 – 왜곡된 사랑 속에서 자신을 지키는 법

《에이프릴의 딸》은 완전히 다른 결을 가진 이야기지만, 역시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비극을 다룬다. 임신한 10대 소녀 발레리아는 어머니 에이프릴과 오랜만에 재회한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는 단지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일 뿐, 진정한 의미의 지지자나 보호자는 아니다.

에이프릴은 딸의 존재를 통제하려 한다. 겉으로는 돌보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녀의 삶을 주도하고, 질투하고, 심지어는 가로막기까지 한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보호나 존중이 아닌, 소유와 조종의 언어에 가깝다. 발레리아는 처음엔 그마저도 기대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결국 자신이 온전히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영화는 어른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묻는다. “부모라는 이름 아래에 있는 모든 사랑이 진짜 사랑일까?” 사랑이라는 말은 붙었지만, 상대를 무너뜨리는 관계라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발레리아는 결국 도망친다. 사랑을 갈망하던 마음보다,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관계 속에서, 가족 안에서, 연인 사이에서, 더는 사랑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선택해야만 할 때. 이 선택은 쉽지 않지만, 그 순간부터 우리는 조금씩 ‘나’를 다시 찾아가게 된다.

4. 사랑을 포기한 게 아니라, 나를 먼저 선택한 거야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사랑이 자신을 파괴하고, 지치게 하고, 존재감을 흐리게 만든다면, 우리는 더는 그 사랑을 감내할 수 없다.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나를 꾸미고, 감정을 숨기며, 늘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면, 그건 관계가 아니라 일방적인 소진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 선택하게 된다. 사랑받는 사람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로. 그 선택은 때로 외로움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가져온다. 더 이상 타인의 기준에 맞추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나의 마음을 먼저 살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회복의 시작이다.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나를 위한 사랑을 먼저 선택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는 대신, 내가 나를 알아주는 일. 그것이 진짜 관계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진짜 사랑도 할 수 있다.

5. 사랑보다 중요한 건, 나를 사랑하는 용기

나는 여전히 사랑을 꿈꾼다. 다만 예전처럼 사랑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안다. 내가 얼마나 외롭고, 흔들리고, 부족하더라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그 사랑은 타인의 확인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스스로를 돌보는 용기다. 실패한 날에도, 상처받은 밤에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나 자신. 사랑을 주기보다 먼저 받아야 했던 그 마음을, 이제는 내가 나에게 건네기로 했다.

사랑받고 싶었던 나, 그 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먼저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놓치지 않겠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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