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혼자인 시간, 불안과 자유 사이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타인의 시선, 관계의 연결, 사회적 역할… 이 모든 것들이 때때로 나를 지탱하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혼자가 되는 순간, 우리는 당황하고 불안해진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끊기면, 세상과의 접점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고,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점점 침잠해간다. 마치 '혼자'라는 말이 곧 '고립'이고, '결핍'이며, '패배'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혼자인 상태는 반드시 외로운 것일까? 우리는 왜 혼자 있는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고, 계속해서 무언가로 채우려 애쓰는 걸까?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혼자의 시간을 감당하며 천천히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노매드랜드》와 《와일드》는 바로 그런 여정에 대한 이야기다. 누군가는 자발적으로,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되었지만, 그 끝에서 마주한 건 결핍이 아닌 존재의 회복이었다.
2. 《노매드랜드》 – 떠도는 삶 속에서 스스로의 뿌리를 세우다
《노매드랜드》는 현대 미국 사회에서 정착할 수 없는 수많은 ‘노마드’들의 삶을 조명하는 동시에, 한 여성의 내면 여행을 깊이 따라간다. 남편의 죽음과 지역 사회의 붕괴로 인해 모든 걸 잃은 주인공 펀은 자신만의 밴을 집 삼아 도로 위에서 살아간다. 그녀는 말 그대로 '혼자'다. 집도, 가족도, 안정된 일자리도 없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는 처절하고 외로운 삶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그 안에서 점점 단단해져 간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펀이 처한 상황이 더 이상 ‘극복해야 할 고난’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혼자인 그녀의 일상은 조용히 흐르고, 그 안에 익숙해진다. 가끔은 슬프고, 때론 외롭지만, 그렇다고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하고, 누구보다 진솔한 방식으로 그 답을 찾아간다.
‘집이란, 내가 있는 곳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더 이상 외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에 기대어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내가 안아주고, 나를 내가 지지할 수 있을 때, 혼자라는 시간은 고립이 아닌 자기 회복의 공간이 된다. 펀의 여정은 ‘혼자 있음’이라는 상태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뜨리고, 그것이 얼마나 깊은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3. 《와일드》 – 모든 관계가 사라졌을 때, 나로 다시 살아가기
《와일드》의 주인공 셰릴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삶이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중독과 방황, 자기 파괴적인 선택들… 그녀는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떠난 곳이, 태평양 산책로(PCT)다.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자연뿐이고, 자신의 두 발뿐이다. 누군가 곁에 있는 것도,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없다. 오직 자신만 있다.
《와일드》는 셰릴이 수천 킬로미터의 산길을 걷는 여정을 따라가면서, 동시에 그녀 내면의 시간을 비춘다. 수많은 회상이 오가고, 때로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 덮쳐오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처음엔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서, 어쩌면 도망치고 싶어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점 걸음은 내면을 향해 나아간다. 그동안 외면했던 기억들, 외로움, 죄책감, 사랑, 상실, 분노… 그 모든 감정들이 걷는 동안 흘러나온다.
그리고 셰릴은 혼자라는 사실을, 점점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는 공간,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그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진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한다. 그 얼굴은, 무너진 모습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다. 《와일드》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짜 회복은 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혼자인 시간은 때때로 우리에게, 그 어떤 관계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4. 혼자인 시간을 지나야 비로소 들리는 마음의 소리
혼자는 외로운 것이라고, 결핍된 상태라고 우리는 오랫동안 배워왔다. 연애를 해야 행복하고, 가족이 있어야 안전하고, 친구가 많아야 정상이란 말들이 우리를 끊임없이 연결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불완전한 듯 느껴지고,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렵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가장 깊은 성찰을 늘 혼자일 때 해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들여다볼 때, 인생의 방향을 고민할 때, 아프고 무너질 때… 결국 우리는 ‘혼자’였다. 그 혼자라는 시간은 힘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진짜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혼자인 시간은 나를 방치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내 감정을 꺼내고,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시간이다. 오히려 관계 속에서 놓쳐왔던 나를 다시 돌아보는 기회다. ‘혼자 있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외로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가질 수 있다.
5. 혼자가 된 나에게 보내는 응원
지금 혼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이 혼자인 건 실패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고. 그저 당신이 지금 필요한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노매드랜드》의 펀처럼, 《와일드》의 셰릴처럼, 우리는 모두 언젠가 혼자가 된다. 그 순간은 외로움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회복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관계 없이도 온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혼자서도 충분히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확신은, 오로지 그 시간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
혼자라는 시간은 어쩌면, 나를 더 사랑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더는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 그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혼자가 외로운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나를 더 잘 알게 된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