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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지 않았더니,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마이 퍼스트 미스터》, 《더 페이버릿》과 함께

by Hary0 2025.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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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비치는 침실 창가에서 따뜻한 빛을 마주한 채 조용히 서 있는 여성의 실루엣과, '내가 참지 않았더니,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 일러스트
▲ 따뜻한 아침 햇살 속 창가에 선 한 여성의 모습. 억눌렀던 감정을 비로소 꺼내며, 회복의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을 담은 감성 일러스트입니다.

1. "괜찮아"라는 말로 누르고만 있었던 감정들

우리는 참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어릴 적부터 배운 건 감정보다 인내였고, 솔직함보다는 참을성 있는 태도였다. 힘들다는 말보단,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고, 눈물은 혼자 있을 때만 허락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샌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참아야지",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 "이건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그렇게 자잘한 상처들은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여갔고,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의 벽처럼 나를 짓눌렀다.

가장 위험한 건, 참는 데 너무 익숙해지면 스스로가 무뎌진다는 사실이다. 나조차도 내가 아픈 줄 모르고, 화가 나 있는 줄 모른다. 그러다 결국 한계점에 도달하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무너져버린다. 그것은 외부에서 오는 공격보다 더 치명적이다. 내가 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작고 소심한 방식으로라도 그 참음을 멈췄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울음을 참지 않고 흘렸던 날, 차마 말 못 했던 감정을 꺼냈던 밤, 웃으며 넘기던 상처를 누군가 앞에서 고백했던 그때. 바로 그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 조금씩 숨이 트이고, 몸이 가벼워지고, 내 마음이 내 편이 되어주기 시작했던 때가. 《마이 퍼스트 미스터》와 《더 페이버릿》은 이런 이야기들을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다. 상처를 참아왔던 사람들이, 더는 참지 않기로 하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2. 《마이 퍼스트 미스터》 – 무너지는 순간, 진짜 마음이 말하기 시작한다

《마이 퍼스트 미스터》의 주인공 리사는 사회에서 실패한 채로 살아가는 중년 남성이다. 그리고 조는 열아홉의 나이에 삶이 버거워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듯한 청소년이다. 처음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이 둘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세계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리사는 조가 입고 있는 온갖 ‘가면’을 본다. 강한 척, 쿨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조는 사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고, 외로웠으며, 보호받고 싶은 아이였다.

조는 오랫동안 참아왔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늘 외면받았고,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내면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리사와의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그녀는 스스로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한다. 감정을 드러내고, 눈물을 보이고, 상처를 인정하고, 분노를 터뜨린다. 그제서야 그녀는 치유될 수 있었다.

리사 또한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무시당하고, 인간관계에서 멀어지고, 삶이 소음처럼 느껴지던 그에게 조는 감정을 다시 꺼내게 만든 존재였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고 느꼈고, 그 감정 안에서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마이 퍼스트 미스터》는 말한다. 참는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든다고. 감정은 흘러야 하고, 말해져야 하고, 때로는 드러나야만 사라진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3. 《더 페이버릿》 – 권력의 뒤에 가려졌던 억눌림과 울분의 해방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세 여성 사이의 치열하고도 감정적인 권력 다툼을 그린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지 정치극이 아니다. 애비게일과 사라, 그리고 앤 여왕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줄다리기는 참아온 감정의 폭발이자, 오랜 억눌림 끝에 찾아온 폭풍 같은 해방을 상징한다.

애비게일은 끊임없이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전략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 행동, 선택 안에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숨어 있다. 애정과 분노, 갈망과 복수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만 흐른다. 그리고 결국, 그녀가 모든 걸 손에 넣었을 때조차 그 감정의 해방은 완성되지 못한다.

사라는 정반대다. 앤 여왕과의 오랜 유대 속에서 그녀는 애정을 넘어선 진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권력의 자리를 놓지 않기 위해,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참아왔던 감정이 무너지며 모든 걸 잃는다.

그리고 앤 여왕. 그녀는 왕이라는 자리에 있지만, 내면은 철저히 고립되어 있다. 사랑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고, 어린 시절의 상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녀의 감정은 늘 권력의 언어로 포장된다. 그녀는 외로움을 참아내는 사람이고, 그 외로움이 감정을 왜곡시키는 인물이다.

《더 페이버릿》은 인간의 감정이 참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참아온 감정은 일그러지고, 왜곡되고, 결국 관계마저 파괴시킨다. 감정은 반드시 말해져야 한다. 울어야 하고, 외쳐야 하고, 이해받아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세계에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하거나 살아갈 수 없다.

4. 참지 않는다는 건, 나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존중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걸 ‘약한 모습’이라고 오해한다. 울지 않으려 하고, 화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늘 괜찮은 얼굴로 살아간다. 하지만 진짜 강함은 감정을 억누르는 데 있지 않다. 진짜 강함은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참지 않는다는 건 무조건 드러내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이 감정이 나에게 존재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다. 화가 난다, 서운하다, 외롭다, 슬프다… 그 감정들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왜 아팠는지, 왜 힘들었는지, 그 이유들을 찾을 수 있다.

감정을 참는다는 건 결국 나를 지우는 일이다. 그리고 참지 않는다는 건, 나를 회복하는 일이다. 작은 말 한마디라도 꺼내보자. “나 오늘 너무 지쳤어.”, “이건 나에게 좀 힘들었어.” 그렇게 마음을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문장이, 놀랍게도 우리 마음의 공기를 바꿔놓는다.

5. 나는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지금도

아직도 우리는 참는다. 사회는 여전히 감정보다 효율을 말하고, 관계는 솔직함보다 예의를 우선시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금의 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주 들여다본다. 예전에는 넘기던 일도 이제는 마음에 묻어두지 않는다. 작은 상처라도 기록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고, 필요하면 말을 꺼낼 수 있다.

참지 않았더니, 나는 조금씩 괜찮아졌다.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내 마음이 내 편이 되었다. 하루를 마치며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아도 나를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회복’이다. 완전히 낫는 게 아니라, 아픈 나를 그대로 데리고 살아가는 힘.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참고 있다. 말하지 못한 감정에 눌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낼 것이다. 그 누군가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참지 않아도 괜찮다고.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나약한 게 아니라고. 오히려 그게 진짜 용기라고. 그리고 꼭 기억하길. 우리가 참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이미 우리는 회복을 시작한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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