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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나를 지키기 위해 놓아야 했던 것들– 《라라랜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함께

by Hary0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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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를 가진 젊은 여성이 노을빛이 드리운 창가 앞에 앉아 창밖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장면. 도시의 빛과 그녀의 실루엣이 따뜻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붉게 물든 노을빛 창가 앞,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한 여성의 모습. 놓아야 했던 감정과 선택을 되새기며, 다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고요한 응원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1. 붙잡을 수 없는 감정, 나를 위해 놓아야 했던 순간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한다. 어떤 선택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어떤 선택은 아픔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복잡한 감정은 ‘놓아야 하는 순간’에서 피어난다. 그것이 사랑이든, 관계든, 혹은 오래 꿈꿔온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결국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다른 무언가를 내려놓아야만 할 때가 있다. 사랑은 본래 소유의 감정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랑하면 붙잡고 싶고, 머무르고 싶고, 영원하길 바란다. 하지만 어떤 사랑은 끝까지 붙들면 오히려 나를 상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더는 나를 나답게 만들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감정의 깊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감정에 나를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놓는 일’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사랑하지만 떠나야 했던 사람들’, ‘아직 마음이 남아 있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작별했던 순간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사랑은 감정의 절정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끝맺음의 방식에서도 진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말한다. 《라라랜드》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그 대표적인 두 편이다. 이들은 ‘헤어짐’을 실패나 불행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을 지켜냈는지, 어떤 감정들을 품고 흘려보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지나온 관계들에 대해 다시 묻게 만든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어떤 감정을, 어떤 사람을, 어떤 꿈을 놓았던 적이 있었는지.

2. 《라라랜드》 –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꿈, 하지만 결국 혼자 서야 했던 이유

《라라랜드》는 꿈을 향해 달리는 두 예술가, 미아와 세바스찬의 이야기다. 둘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결국 함께하지 않는다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많은 관객들은 이 결말 앞에서 슬퍼하고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랑이 있었기에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할 수 있었고,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빛나는 삶을 살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세바스찬은 미아의 꿈을 응원했고, 미아는 세바스찬의 음악에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서로의 꿈을 위해 자신을 덜어내기 시작한다. 미아가 떠나는 오디션에 세바스찬이 함께하지 못하는 장면, 서로의 삶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흐름 속에서, 관객은 사랑이란 감정조차도 때로는 방향이 다르면 공존할 수 없음을 체감하게 된다.

결국 몇 년 후, 둘은 각자의 꿈을 이룬 채 서로를 마주한다. 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눈빛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그건 애틋함 이상의 감정,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진심이었다’는 고백이다. 그 장면이 주는 울림은 이별의 슬픔보다 더 큰 의미를 전한다. 사랑은 반드시 함께하는 것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 시절의 감정이 진실했고, 서로를 믿었고, 응원했으며, 서로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그 사랑은 여전히 유효하다.

《라라랜드》는 결국 말한다. 우리가 놓은 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함께 가기엔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두 개의 길이었고, 각자의 삶에서 더 건강한 사랑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거리감이었다고.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가장 깊은 존중일지도 모른다.

3.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사랑은 지나가지만, 감정은 남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청춘의 여름, 엘리오와 올리버의 감정을 섬세하고도 깊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의 아름다움은 그들의 사랑이 짧고 강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랑을 마주하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피어난다. 이별 이후에 남겨진 엘리오의 감정은 단지 상처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신이 진짜 사랑을 경험했다는 증거이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그 순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올리버가 떠나고 엘리오가 벽난로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 눈물은 연약함이 아니라, 감정을 끝까지 느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다. 그는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 안에 스스로를 그대로 두며, ‘사랑의 유효성’을 지켜낸다.

중요한 건, 엘리오가 그 슬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감정을 깊이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올리버와의 사랑은 짧았지만, 그 여름을 통해 엘리오는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었고,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이별은 그런 의미에서 상실이 아니라, 자기 인식의 확장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말한다. 사랑은 끝나더라도, 그 사랑을 나눴던 나 자신은 끝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보내고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고, 다시는 만나지 않아도 그 시절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고.

4.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놓은 것들, 그건 결코 후회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놓았던 관계, 선택, 감정을 후회한다. “그때 왜 조금 더 참지 못했을까?”, “내가 그 사람을 떠나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은 이별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게 된다. 하지만 모든 후회는 정답 없는 감정 속에서 오해와 판단을 반복하는 감정의 굴레일 뿐이다. 실은, 우리는 그때도 최선을 다했다. 우리의 선택은 그 순간의 진심이었다. 그리고 ‘놓는 일’은 그 진심마저 포함한, 너무나도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사랑을 놓는다는 건, 그 사람을 향한 감정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사랑해서, 그 사랑이 나를 상하게 하거나, 나를 잃게 만들까 봐 내린 결정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며, 동시에 나 자신을 다시 붙잡는다. 나는 어떤 감정을 버린 게 아니라, 그 감정 속에서 나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놓는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출발점이고, 더 건강하게 관계를 바라보는 힘이다. 그 감정이 진짜였다는 걸, 내가 거기까지 사랑했다는 걸, 내가 나를 지키고 싶었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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