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는 단순한 뮤지컬 로맨스를 넘어, 감정의 결이 짙게 깔린 인생의 교차로를 마주하는 이야기다. 음악과 춤으로 포장된 이 영화는 사실, 감정의 진폭과 선택의 무게를 찬찬히 그려낸 정서적 드라마에 가깝다.
다미엔 셔젤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꿈을 좇는 사람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배경 삼아, 수많은 청춘들이 겪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낭만적으로 담아냈다. 그러나 그 낭만은, 결국 선택과 이별의 상처를 감싸 안는다. 라라랜드는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환상을 벗기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된다.
🎵 뮤지컬 형식에 감정을 입힌 도시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은 로스앤젤레스 고속도로 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뮤지컬 씬이다. 모두가 차 안에 갇혀 답답해하는 순간, 음악이 울리고 이들은 갑자기 무대 위 배우처럼 움직인다. 이 장면은 상징적이다.
교통 정체의 공간 = 현실, 그 위에서의 춤 = 꿈. 우리는 모두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동시에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무대를 펼치고 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시각적 쾌감이 아니라, 라라랜드 전체의 톤을 정의하는 시퀀스다. 꿈은 현실을 가로지르며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미아와 세바스찬의 삶은 결코 경쾌하지 않다. 미아는 카페에서 일하며 오디션을 보지만 늘 떨어지고,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를 하고 싶지만 생계를 위해 팝 밴드의 키보드를 맡는다. 이들의 삶은 꿈과 현실이 충돌하는 공간 위에서 줄타기를 한다.
이들이 나누는 첫 춤, ‘A Lovely Night’ 씬은 ‘썸’을 노래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는 서로를 원하지만, 아직 확신하지 못해”라는 메시지를 숨기고 있다. 춤과 음악은 이 영화에서 감정의 우회로다. 말하지 못한 것들을 노래로,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을 춤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감정 서사의 중심에 둔 라라랜드만의 방식이다.
💔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결국 선택한 건 서로의 꿈이었다
라라랜드의 사랑은 찬란하면서도 덧없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에게 영감을 준다. 미아는 세바스찬 덕분에 단편극을 올릴 용기를 내고, 세바스찬은 미아의 격려로 현실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랑이 둘 다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좁은 그릇이었다는 점이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다른 방식으로 걷는다. 사랑은 서로를 돕지만, 꿈은 서로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공감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음에도, 나는 외롭다”는 감정.
특히 세바스찬이 밴드 활동에 몰입하면서 미아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서로의 삶에 소홀해지는 과정은 슬프지만 현실적이다. 우리는 꿈을 좇는 동안, 때로 가장 소중했던 감정을 잃기도 한다. 라라랜드는 이 감정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감정의 리얼리티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 상상의 몽타주, 그리고 현실이라는 정직함
라라랜드의 마지막 10분, 많은 관객들이 멈춰 숨을 고르게 되는 부분이다. 피아노 선율 위에 펼쳐지는 ‘만약’의 장면들. 만약 그들이 함께했더라면, 함께 살았더라면, 함께 아이를 키웠더라면. 이 장면은 일종의 판타지지만, 그것은 결코 회피가 아니다.
세바스찬의 피아노는 미아의 마음이자, 동시에 관객의 감정이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다르게 살았다면 어땠을까’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상상이 끝나는 순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 구조는 이 영화가 결코 환상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 몽타주가 더욱 애틋하게 다가오는 건, 그들이 헤어진 뒤에도 서로를 지워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끝났지만, 감정은 남았고, 그 감정이 각자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어줬다는 사실이 더욱 큰 울림을 남긴다.
🌠 2025년, 다시 꺼내보는 이유
우리는 왜 이토록 자주 라라랜드를 다시 꺼내보는 걸까? 단지 영상미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지금 우리의 감정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시대에 꿈을 말하기는 조심스럽고, 사랑은 너무 쉽게 흘러간다. 그런 시대에서 라라랜드는 “완벽하지 않아도, 그 순간 우리는 진짜였다”는 감정을 전한다.
또한, 선택의 정당성보다 감정의 진정성에 주목한다. 그들의 결말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니다. 그냥 ‘현실’일 뿐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 마무리하며: 라라랜드는 우리 모두의 연주
세바스찬이 말했던 재즈의 본질은 ‘충돌’과 ‘즉흥’이다.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하모니가 만들어진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틀어지고, 어긋나고, 포기하고, 때로는 눈물로 끝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만의 음악이 된다.
라라랜드는 말한다. “그 순간의 너와 나,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우리가 사랑한 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