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이라는 환상, 진짜 리더의 탄생
《왕의 귀환》은 말 그대로 시리즈의 ‘끝’을 장식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에서 ‘끝’이란 단어를 단순히 전쟁의 종결, 반지의 파괴, 혹은 왕의 복귀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 영화는 시작보다 더 어려운 ‘끝맺음’의 본질을 정면으로 다룬다.
먼저, 아라곤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시리즈 내내 ‘왕이 될 운명을 지닌 자’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 자신의 피와 과거에 대한 두려움으로 왕좌를 거부한다. 하지만 《왕의 귀환》에서 그는 전쟁이 절정에 이른 순간, 마침내 왕으로서 곤도르의 백성 앞에 선다. 그는 누구보다 먼저 앞장서고, 누구보다 늦게 검을 거두며,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끝까지 남아주는 리더’의 역할을 해낸다.
그가 아라곤에서 엘레사르 왕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단순한 정치적 승리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짊어지며, 자신보다 더 큰 세계를 위해 존재하기로 선택한 인간의 이야기다. 2025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아라곤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순간에 리더가 되는가? 리더란 반드시 강해야 하는가? 아니면 가장 먼저 두려움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인가?"
프로도와 샘의 이야기도 이 축에서 빼놓을 수 없다. 프로도는 반지를 들고 모르도의 심장부로 향하면서, 점점 더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는 이제 반지를 파괴할 수 없을 만큼 지쳐 있고, 중독돼 있으며, 혼란스럽다. 여기서 샘의 존재는 단순한 친구, 혹은 충직한 동료 그 이상이다. 샘은 프로도에게 이렇게 말한다. “반지는 들 수 없지만, 당신은 들 수 있어요.” 이 한 문장에 담긴 무게는 엄청나다. 누군가의 짐을 대신 들 수는 없어도, 그 사람 자체를 안고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을 지탱하는 방식이며, 진정한 연대다.
이 영화에서 ‘영웅’이란 단어는 재정의된다. 검을 휘두르는 자도, 전략을 짜는 자도 아닌, 끝까지 곁에 남아주는 자, 한 걸음 늦게 가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자가 진짜 영웅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너는 지금, 누구의 짐을 함께 들고 있는가?”
2. 상처의 흔적 – 진짜 회복이란 무엇인가
반지가 파괴되고 사우론의 탑이 무너지며, 우리는 눈앞에 거대한 승리를 마주한다. 하지만 《왕의 귀환》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영화의 진짜 용기는 ‘승리 이후’를 조명한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축제가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슬픈 반성의 시간이다.
프로도는 샘과 함께 호빗 마을로 돌아온다. 그곳은 여전히 평화롭고, 사람들은 축제처럼 일상을 즐기지만, 프로도의 얼굴에는 단 한 번도 환한 미소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지킨 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일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가 경험한 고통, 공포, 피로는 단지 한 시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프로도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떠올린다. 그가 말한다. “어떤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아요.” 이 대사는 단순한 신체적 의미가 아니라, 감정의 상흔이 남긴 흔적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날의 우리는 정신적 회복과 트라우마에 대해 더 많은 말을 나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너무 쉽게 ‘괜찮다’고 말한다. ‘힘내’, ‘시간이 약이야’라는 말들이 어쩌면 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주 놓친다. 《왕의 귀환》은 그런 점에서 매우 솔직하다. 진짜 회복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변한 자신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프로도는 중간계를 떠난다. 그는 엘프들과 함께 바다를 건너는 선택을 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의 ‘자기 자신을 위한 마지막 선택’이다. 우리는 이를 도피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더 이상 이 세계에서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가 떠나는 모습은 회복을 위한 용기, 마지막 자존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 이별 앞에서 샘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것 또한 중요한 이야기다. 남겨진 이가 다시 살아가는 법을 선택한다는 것, 그것 또한 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은 끝난 뒤에도 계속 살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대답은, 아주 조용한 미소 속에 숨어 있다.
3. 모든 캐릭터는 하나의 우주다 – 집단이 아닌 개인의 완결성
《왕의 귀환》이 진짜 걸작인 이유는, 메인 캐릭터 외의 수많은 인물들도 저마다의 서사와 감정적 귀결을 지니고 있다는 데에 있다. 곤도르의 재건, 로한의 상흔, 간달프의 지혜, 에오윈의 각성, 페렌의 회복…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정서적 피날레를 만들어낸다.
가장 먼저 곤도르. 사람들은 ‘왕이 돌아온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사실 곤도르는 그 왕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의 실패를 직시해야 했다. 데네소르의 광기와 절망은 권력에 대한 집착과 두려움이 만든 결과였고, 이는 곤도르가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 상징이었다. 그 폐허 위에서 아라곤은 말한다. “나는 당신들의 왕이 아니라, 이 땅의 수호자다.” 이 말은 ‘지배’가 아닌 ‘공존’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로한의 에오윈 또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전장에서 활약하며, 전통적 여성성에 저항하고,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인물로 자리잡는다. 그녀가 사우론의 수하에게 검을 꽂으며 외치는 대사. “나는 남자가 아니다.” 이 한 문장은 지금 봐도 전율이 인다. 그녀는 ‘여성성’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골룸. 그는 마지막 순간, 반지와 함께 파멸한다. 하지만 그의 집착이 없었다면, 반지는 결코 파괴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순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악은 구원받지 못했지만, 그것이 세계를 구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골룸은 결코 용서받지 않지만, 그는 이야기를 완성한 인물이다.
《왕의 귀환》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존재는 서사의 조연이 아닌 주연이며, 각자만의 서사적 완결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 시대를 정리하는 방법이다.
🎥 에필로그: 끝을 직시할 줄 아는 이야기, 우리 모두를 위한 작별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프로도는 ‘빨간 책’을 덮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사건 속의 주체가 아니다. 그는 살아남았고, 경험을 글로 남길 수 있는 자가 되었다. 이 장면은 감동적이면서도 깊은 철학을 품고 있다. “살아남은 자에게는, 이야기를 기록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늘 이야기를 찾는다. 새로운 서사, 신선한 캐릭터, 자극적인 결말. 하지만 정작 끝내야 할 이야기의 ‘마무리’는 너무 쉽게 넘긴다. 《왕의 귀환》은 말한다. “끝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다음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2025년 현재,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느리고 조용한 감정의 마침표를 통해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별도 이야기의 일부야. 그리고 이별은, 언젠가 돌아보기 위한 시작이기도 하지.”
우리는 그 시절을 함께했다. 그리고 지금, 다시 꺼내볼 준비가 되어 있다면— 《왕의 귀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당신의 감정을 천천히 마무리해줄 준비를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