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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2025 재조명)

by Hary0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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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순한 재난영화를 넘어선, 사회적 통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엄태화 감독의 연출 아래,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국내외 영화제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되기도 했다.

2025년 현재, 재난과 정치, 생존과 공동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으며,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 논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화적 기호로 기능하고 있다. 이 리뷰에서는 줄거리 요약부터 인물 해석, 상징적 메시지, 그리고 이 영화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거울로서의 기능까지 다각도로 분석해 본다.

재난 이후의 리얼리즘: 배경 설정과 줄거리

영화의 시작은 갑작스러운 대지진이다. 관객은 서울이 완전히 무너진 충격적인 장면 속으로 빠져든다. 이는 단순한 시청각적 충격만이 아니다. ‘일상이 한순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불안은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에게 현실적인 공포로 다가온다.

영화는 아포칼립스 장르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재난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 선택의 무대는 ‘황궁아파트’라는 서울 시내의 중산층 아파트다. 외부 건물들이 모두 붕괴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 공간은 이제 생존자들이 몰려드는 유일한 성역이 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외부인을 통제하고, 그 중심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영탁’이 리더로 부상한다. 그의 통치는 점점 폭력적이고 독재적으로 변해간다. 처음에는 공동체 보호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던 그의 조치는, 시간이 흐르며 윤리의 경계를 넘기 시작한다.

재난 이후의 서울은 단순히 배경이 아닌, 사회적 실험장이다. 국가는 사실상 기능하지 않으며, 통제와 보호의 책임은 공동체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정치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국가 없는 상태에서 권력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권력이 정당성을 얻는 기준은 무엇인가?"

인물 분석: 영탁의 권력 중독과 공동체의 붕괴

영탁은 이 영화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재난 초기에는 책임감 있는 시민의 모습이다. 그는 주변 사람을 돕고, 공동체를 위해 나서며,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점점 그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선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독단적 권력을 행사한다.

이병헌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카리스마와 두려움을 절묘하게 오간다. 그의 리더십은 처음엔 필요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행하는 폭력과 공포 정치가 점차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는 더 이상 ‘아파트 주민대표’가 아닌, 하나의 체제 그 자체가 된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깨닫는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진짜 ‘재난’은 지진이 아닌, 인간이 권력을 손에 쥐었을 때 벌어지는 통제 불가능한 변화라는 것을.

영탁의 반대축에는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가 있다. 그녀는 간호사로,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간성, 윤리, 양심을 지키려 한다. 그녀의 존재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희망’의 잔존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도덕성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강자의 질서 속에서 약자의 윤리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은 중간자적 위치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관객의 시선은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상황을 체험하게 되고, 결국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내면화하게 만든다.

메시지와 상징 해석: ‘유토피아’라는 역설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은 본질적으로 역설이다. 콘크리트는 차갑고 경직된 구조물이며, 유토피아는 누구도 닿지 못하는 이상향이다. 이 두 단어의 결합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공동체의 이면을 정확히 드러낸다.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자산이며, 신분이며, 계급이다. ‘황궁아파트’라는 이름부터 이미 상징적이다. 이 영화는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차별, 배제, 권력 구조를 통해 현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만들어낸다. 재난 이후 형성된 공동체 내부에서조차, 기득권 유지, 외부인 배제, 내부 권력 투쟁이 반복된다.

‘우리끼리만 살아남자’는 영화 속 슬로건은, 팬데믹을 겪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마스크 사재기, 백신 우선순위, 거리두기 위반 등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사회의 민낯은 이 영화 속 상황과 다르지 않다. 영화는 묻는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인간은 정말로 연대할 수 있는가?” “이기심이 당연한 것이라면, 도덕은 왜 존재하는가?”

영화 말미, 아파트가 다시 위기에 처하고, 생존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벌인 선택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 누구도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만을 남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화다. 그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으며, 재난이라는 비상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황궁아파트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영탁은 그 안에서 누구나 될 수 있는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 작품은 한 편의 영화이자 동시에 질문이다. “당신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는가?” “그리고 그 유토피아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반드시 감상해 보길 권한다. 그리고 본 적이 있다면, 2025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한번 돌아보길 추천한다. 그 속에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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