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哭聲)’은 2016년 개봉 이후에도 여전히 국내외 영화 팬들 사이에서 활발히 해석되고 논의되는 작품이다. 2025년 현재에 와서도 이 영화는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넘어, 종교적 상징, 민속 신앙, 인간 내면의 공포와 같은 다층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회자된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도 가장 모호하고 열린 결말을 제시하는 영화인 ‘곡성’은 관객 스스로가 믿고 싶은 것을 선택하게 만드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다. 본 리뷰에서는 ‘귀신’, ‘외지인’, ‘무속’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곡성의 핵심 메시지와 구조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귀신의 존재와 정체
곡성의 공포는 단순한 시각적 충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귀신이나 악령의 존재를 명확히 규정짓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실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큰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귀신’이라는 키워드는 이 영화에서 한국 전통의 귀신 서사, 기독교적 악마 개념, 일본의 요괴 전설 등이 혼합된 상징으로 등장한다.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피부병, 가족 살해 사건, 환각, 초자연적 현상 등은 귀신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그것이 실제 존재인지, 인물들의 심리적 투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외지인의 존재와 연결된 귀신 개념은 더욱 모호하다. 그가 실제로 초자연적 존재인지, 단순한 범죄자인지, 혹은 모두의 환상 속 산물인지는 감독조차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이로 인해 영화는 귀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인간 심리의 불안정함과 믿음의 혼란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한다. 극 중 등장하는 무명, 외지인, 일광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귀신’을 해석하며, 관객은 이들 중 누구의 말이 옳은지 끝내 판단하지 못한다.
또한, 영화는 ‘악’이라는 개념을 특정 존재로 형상화하기보다,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공격하게 만드는 불신의 구조 자체로 접근한다. 즉, 곡성에서 귀신이란 존재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믿음, 혹은 그 믿음의 왜곡에서 비롯된 파괴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곡성의 귀신은 단순한 유령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악의 형상화’이며, 그 정체를 알 수 없기에 더 큰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외지인의 상징성과 해석
‘곡성’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캐릭터는 단연코 외지인이다. 그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마을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키는 원인으로 등장한다. 설정상 일본인이라는 점, 혼자 외딴 산속에 살며, 기이한 사진과 물건들로 가득 찬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점 등이 마을 사람들에게 충분한 의심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영화는 외지인이 정말로 범인인지에 대해 끝내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 스스로가 그의 정체를 추론하게 만든다.
외지인의 캐릭터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타자의 상징이다. 한국 사회에서 ‘외지인’, 특히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연결되며, 그것만으로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감독은 이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관객이 외지인을 미리 악한 존재로 판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들어서면, 외지인이 실제로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역시 제시된다. 이는 곡성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인 ‘믿음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또한 외지인은 종교적 상징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일광이 주장하는 ‘악마’로서의 외지인, 무명이 언급하는 ‘유혹하는 자’로서의 외지인, 그리고 그저 생존을 위해 사는 이방인이라는 관점까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의 정체는 곡성의 전체 구조에서 중심축이 되며, 종구가 믿음을 어디에 둘지에 따라 가족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믿음의 시험자’로 기능한다. 이처럼 외지인은 단순히 영화의 공포 요소를 담당하는 인물이 아니라, 곡성의 철학적 주제를 구현하는 중요한 상징이자, 관객의 믿음을 시험하는 거울 같은 존재다.
무속신앙과 무명의 역할
한국적 공포 영화에서 ‘무속’은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지만, 곡성만큼 이를 정교하게 활용한 작품은 드물다. 영화 속 무명은 겉보기에는 귀신을 쫓는 무속인 같지만, 그녀 역시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그녀는 종구에게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며,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을 만든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진실인지, 혹은 조작된 유혹인지 알 수 없기에 종구는 끝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무속이 전하는 ‘감’과 ‘직관’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무속은 과학적 증거나 논리 대신, 영적인 신호와 직관에 의존하는 신앙이다. 곡성은 이러한 무속의 속성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무명의 존재는 선과 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그녀의 행동은 보는 이마다 해석이 달라진다. 영화는 이를 통해 인간의 신앙 구조, 특히 한국 사회에서 무속이 가진 이중적 이미지—신뢰와 불신, 존경과 두려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또한 무속은 곡성에서 진실을 말해주는 역할도, 혼란을 가중시키는 역할도 모두 수행한다. 그녀의 등장은 종교적 혼란을 상징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 이는 영화의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곡성에서 무속은 단순한 문화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믿음 체계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나홍진 감독은 이를 통해 한국적 공포의 본질과, 우리 사회에 내재한 종교적 긴장을 매우 섬세하게 담아냈다.
2025년 현재, ‘곡성’은 여전히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작품이다. 귀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공포의 본질을 묻고, 외지인을 통해 인간의 편견을 들춰내며, 무속이라는 전통 신앙을 통해 믿음과 불신의 경계를 탐색한다. 이 영화는 단순히 누가 악인인지 판단하기보다, 그 판단 과정 자체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험한지를 말하고자 한다. 곡성을 다시 보는 당신에게 필요한 건 단 하나, 스스로의 믿음이다. 이제 당신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