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개봉작 ‘간신’은 연산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정치 사극 영화로, 역사 속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권력과 쾌락의 이면을 파헤친다. 당시엔 파격적인 연출과 선정성으로 큰 화제를 모았지만, 2025년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단순한 시각 자극을 넘어서 인간과 권력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영화 '간신'의 인물 재구성, 연출적 완성도,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정치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심도 있는 리뷰를 진행한다.
조선의 ‘간신’들, 실존 인물과 영화 속 재현
영화 ‘간신’은 조선 시대 연산군 치하에서 권력을 이용해 쾌락 정치를 펼친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임숭재는 역사 속 조광헌과 임사홍을 모델로 한 복합 캐릭터다. 임숭재는 연산군의 총애를 얻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미녀를 선발하고, 이들을 통해 왕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임무를 맡는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히 충신과 간신의 대립이 아니라, 권력자와 그 권력을 조종하려는 자들 사이의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임숭재는 말 그대로 ‘왕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단순한 간신을 넘어선다. 그는 자신의 생존과 권력 유지를 위해 윤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내면마저도 잃어간다. 연산군은 그런 그를 이용하면서도 동시에 경계한다. 이는 권력자와 간신의 관계가 단순히 위계가 아닌 공생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구조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묘사다.
실제 역사 속 연산군은 폐위된 폭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사홍은 그의 측근으로 권력의 극단을 경험한 인물이다.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픽션적 상상력을 더해, 권력과 인간 욕망의 본질을 고찰한다. 단지 간신의 악행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도구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권력의 주변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영상미와 연출, 한국 정치사극의 새로운 시도
‘간신’은 기존 사극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연출로 주목을 받았다. 감독 민규동은 영화 전반에 걸쳐 화려하면서도 불편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권력과 성의 결합을 묘사한다. 특히 궁녀를 선발하는 장면은 조선판 미인 대회를 연상시키며, 국가의 정치가 왕의 사적 쾌락을 위해 조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사용된 붉은 조명,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는 카메라 워크, 느릿한 음악의 리듬은 관객으로 하여금 아름다움 속에 내포된 공포를 체감하게 만든다.
또한 의상과 세트 디자인은 단순히 시대 고증을 위한 요소가 아니라, 각 인물의 심리와 영화의 주제를 대변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연산군이 앉아있는 커다란 붉은 보좌는 절대 권력의 무게를 상징하고,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복색은 계급 구조와 충성의 정도를 색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권력의 위계가 시각적으로도 끊임없이 강조되는 효과를 만든다.
음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마다 절제된 국악기 사운드가 삽입되어 긴장감을 높이고, 때로는 침묵 자체가 공포를 만들어낸다. 이는 ‘간신’이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라 현대적 감각의 서스펜스극으로 읽히게 만드는 요소다.
‘간신’은 단순히 연산군의 폭정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권력 구조 자체가 어떻게 인간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뒤틀며, 시스템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실험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극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시도였으며, 이후 다수의 사극 드라마와 영화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25년 시점에서의 재평가, 왜 지금 '간신'인가?
2025년,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 책임과 윤리, 권력 구조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 속에 있다. 그 속에서 ‘간신’은 단순한 영화가 아닌,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이자 역사적 은유로 기능한다. 특히 연산군과 간신들 사이의 관계는 현재의 정치권 인물들과 오버랩되며, ‘간신’이라는 존재의 정의를 다시 묻게 만든다.
현대사회에서 간신은 더 이상 고위 관직에 있는 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SNS, 미디어, 기업, 심지어 일상 속에서도 권력의 입맛에 맞춰 움직이는 수많은 간신 구조가 존재한다. 영화 속 임숭재처럼, 생존을 위해, 혹은 더 큰 이익을 위해 윤리를 포기하는 선택은 지금도 수없이 반복된다. 따라서 '간신'은 그 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개봉 당시 선정성 논란으로 인해 본질적인 메시지가 흐려졌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그 선정적 요소들이 정치적 구조의 상징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과도한 욕망과 그에 대한 대가, 권력의 본질을 드러내는 수단으로써의 성적 표현은, 단순한 자극이 아니라 메시지 전달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2025년의 시점에서 ‘간신’을 다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간신은 항상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존재를 어떻게 직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통제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간신’은 여전히 강력한 영화적,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간신’은 시대를 초월해 권력, 인간, 사회 구조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파격적인 연출과 시각적 상징을 통해 정치적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이 영화는, 2025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 있는 콘텐츠로 재조명되고 있다. 단순한 사극을 넘어선 이 작품을 다시 감상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 속 간신과 권력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 OTT 플랫폼에서 지금 확인해 볼 수 있다.